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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설악산은 정상에서부터 내려온 가을빛이 계곡을 따라 마지막 자취를 남기는 시기다. 높은 봉우리는 이미 겨울을 준비하고 있지만, 산 아래로 이어지는 계곡에서는 늦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거대한 바위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고,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내설악 특유의 깊은 산세가 펼쳐진다.
설악산은 대청봉과 울산바위처럼 높은 봉우리로 유명하지만, 정상에 오르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트레킹 코스가 많다. 특히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은 산행과 달리 물소리를 들으며 주변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여기에 그동안 차량과 함께 이용하던 진입도로를 벗어나 별도의 보행로로 걸을 수 있는 구간까지 완성됐다.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자리한 '백담계곡 탐방로'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6일 전 구간이 개통된 이곳은 설악산국립공원 백담분소에서 백담사까지 5.7km 이어지는 국내 트레킹 명소다. 총 243억 원이 투입된 탐방환경 개선사업을 통해 보행로가 정비됐으며, 계곡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다리도 설치됐다. 지금부터 새롭게 완성된 백담계곡 탐방로와 실제 걷기 코스를 알아본다.
243억 투입한 5.7km 백담계곡 탐방로
백담계곡 탐방로는 인제군 북면 용대리의 설악산국립공원 백담분소에서 출발해 백담사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설악산 내설악 권역으로 들어가는 대표적인 진입 구간으로, 계곡을 따라 숲과 암벽이 길게 펼쳐져 있다.
인제군과 국립공원공단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는 지난 6일 백담계곡 탐방로 개통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사전 신청한 참가자 100명이 개통 기념 트레킹에 참여했으며, 새로 연결된 탐방로를 따라 백담계곡의 자연을 감상했다.
이번 개통의 핵심은 기존 차량 통행로와 보행 구간을 분리했다는 점이다. 과거 백담사 진입도로는 일부 구간의 폭이 2.5m에 불과했다. 굽이치는 산길을 따라 마을버스가 운행하는 가운데 탐방객도 같은 도로를 걸어야 했으며,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보행에 불편을 겪는 구간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020년부터 사업 계획이 마련됐다. 국립공원공단이 탐방로 조성 등에 111억 원, 인제군이 진입도로와 주변 환경 개선 등에 132억 원을 부담해 총 243억 원이 투입됐다.
공사는 단계적으로 진행됐다. 2023년 일부 탐방로가 먼저 개통됐고, 올해 은선도에서 청룡담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완성되면서 전체 보행로가 연결됐다.
특히 기존 도로에서 별도의 보행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곳에는 계곡 건너편으로 약 800m 길이의 우회 탐방로를 만들었다. 여기에 은선교와 청룡교 등 출렁다리 2개를 설치해 계곡 양쪽을 오갈 수 있도록 했다.
새롭게 연결된 탐방로에서는 백담계곡의 암벽과 물길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계곡 양쪽으로는 단풍나무와 활엽수가 자라고 있으며, 가파른 산비탈 아래로 크고 작은 바위들이 이어진다.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은 여러 곳에서 맑은 소와 여울을 형성한다.
백담계곡은 설악산에서도 계곡의 모습이 아름답기로 알려진 곳이다. 거대한 바위와 숲이 이어지는 구간에서는 내설악 특유의 깊고 웅장한 산세를 느낄 수 있다. 11월에는 단풍이 절정을 지난 곳도 있지만, 낙엽이 떨어진 숲 사이로 계곡의 지형이 뚜렷하게 드러나 늦가을 트레킹을 즐기기 좋다.
만해 한용운의 흔적이 남은 백담사
백담계곡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마지막에 백담사를 만나게 된다. 설악산 내설악 깊은 곳에 자리한 사찰로, 주변 산봉우리와 계곡에 둘러싸여 있다. 용대리에서 백담사로 이어지는 길은 오래전부터 사찰을 찾는 방문객과 설악산 등산객들이 이용해 온 코스다.
백담사는 신라 진덕여왕 원년인 647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한계사에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오랜 세월 여러 차례 화재를 겪으며 사찰의 위치와 이름이 바뀌었고, 조선 정조 때인 1783년 백담사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백담사라는 이름에는 설악산의 계곡과 관련된 전설도 담겨 있다. 대청봉에서 사찰까지 백 개의 웅덩이가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백담계곡에는 오랜 시간 물살에 깎인 바위와 깊은 물웅덩이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백담사는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만해 한용운과도 인연이 깊다. 한용운은 이곳에서 출가해 수행했으며, 백담사는 그의 문학과 불교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한용운의 대표 시집 '님의 침묵'과 관련된 흔적도 남아 있다.
사찰 안에는 만해기념관이 마련돼 있어 그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경내에는 극락보전과 여러 전각이 자리하며, 주변을 둘러싼 산세가 사찰의 차분한 분위기를 더한다.
백담사를 대표하는 또 다른 장면은 사찰 앞 계곡에 모여 있는 돌탑이다. 넓은 자갈밭에는 방문객들이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작은 돌탑들이 이어진다. 크고 작은 돌들이 층층이 쌓인 모습 뒤로 설악산 계곡이 펼쳐져 백담사를 찾는 여행객들이 자주 사진을 남기는 장소다.
백담사 경내를 둘러본 뒤 계곡 앞에 서면 사찰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산줄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계곡 바닥에는 둥글게 닳은 돌들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그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른다. 백담계곡 트레킹을 마친 뒤 잠시 쉬어가며 내설악의 자연을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백담분소부터 백담사까지 트레킹 코스
백담계곡 탐방로를 걸으려면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있는 백담사 입구를 출발점으로 잡으면 된다. 용대리에는 탐방객을 위한 주차장과 마을버스 매표소가 마련돼 있으며, 백담사까지는 일반 승용차의 진입이 제한된다.
새로 연결된 도보 탐방로는 백담분소에서 백담사까지 편도 5.7km다. 걸어서 이동하면 약 2시간이 걸리며, 계곡을 감상하거나 사진을 찍는 시간을 고려하면 2시간에서 2시간 30분 정도를 잡을 수 있다.
추천 트레킹 코스는 백담분소 → 백담계곡 도보 탐방로 → 은선교·청룡교 구간 → 백담사 → 만해기념관 → 백담사 앞 계곡 순서다. 백담사에 도착한 뒤 사찰까지 둘러보면 내설악의 자연과 역사, 문학을 함께 만나는 일정이 완성된다.
돌아오는 길은 걷거나 마을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같은 탐방로를 따라 왕복할 경우 약 11.4km를 걷게 되며, 백담사 관람을 포함하면 반나절 정도를 확보해야 한다. 편도 트레킹을 선택한다면 백담사에서 용대리로 내려오는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마을버스는 용대마을향토매표소와 백담사 사이를 운행한다. 차량 이동 거리는 약 7km이며, 소요시간은 약 18~20분이다. 성인 기준 편도 요금은 2500원, 만 6~18세는 1200원이다. 도보 탐방로의 5.7km와 버스 운행 구간의 7km는 서로 다른 거리다.
버스 운행시간은 계절에 따라 바뀐다. 11월 3일부터 14일까지는 용대리 출발 첫차가 오전 7시, 백담사에서 내려오는 마지막 버스가 오후 6시다. 11월 15일부터는 첫차가 오전 9시로 늦춰지고 백담사 하행 막차도 오후 5시로 변경된다. 운행시간은 현장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백담계곡은 설악산 깊은 곳에 자리한 만큼 단순한 도심 산책로와는 차이가 있다. 특히 11월에는 해가 짧아지기 때문에 오후 늦게 출발하면 백담사 관람까지 마치기 어려울 수 있다. 처음부터 5.7km를 모두 걸을 계획이라면 오전에 출발해 계곡과 사찰을 충분히 둘러보는 일정이 어울린다.
한편 백담계곡에서는 탐방로 개통 이후에도 주변 환경 개선사업이 이어질 예정이다. 계곡을 따라 설치돼 있던 전봇대 158주와 송전선로를 철거하고, 기존 디젤 마을버스도 12월부터 순차적으로 전기버스로 교체할 계획이다. 앞으로는 계곡 주변의 인공시설물이 줄어들면서 내설악의 산세와 물길을 더욱 넓게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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