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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감동을 만끽하는 삼성(사진=삼성)[더게이트]
외국인 에이스가 14일 동안 네 번이나 마운드에 올랐다. 토종 에이스는 선발과 불펜을 오갔고, 옆구리를 다쳐 제대로 스윙조차 못 하는 41세 포수는 시리즈 내내 안방을 지켰다. 주장은 아픈 허벅지로 3루까지 내달렸고, 불혹의 노장은 글러브를 끼고 외야를 누볐다. 삼성 라이온즈가 모든 면에서 불리했던 조건을 극복하고, 야구의 신도 감동할 투혼으로 정규시즌 최강팀을 무너뜨렸다.
삼성은 8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KT 위즈를 12대 1로 꺾었다. 1차전을 내준 뒤 내리 네 경기를 이긴 삼성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을 확정했다. 2014년 이후 12년 만이자 프랜차이즈 통산 아홉 번째 우승이다. 삼성이 정규시즌 1위 팀을 꺾는 '업셋'으로 정상에 오른 것은 창단 이후 처음이다.
한국시리즈 전까지만 해도 온 우주의 기운은 KT를 향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규시즌 90승의 강팀 KT는 3주 가까이 쉬며 한국시리즈를 준비했다. 반면 삼성은 KIA 타이거즈와 플레이오프 5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치르며 주축 선수들의 체력이 바닥났고, 외국인 원투펀치와 불펜도 소모했다. 정규시즌 구원왕 김재윤마저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어떤 시나리오를 돌려봐도 삼성이 이기기는 어려워 보였다.
1차전 중반까지는 시리즈가 예상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삼성은 6회까지 0대 8로 크게 끌려갔다. 하지만 7회 구자욱의 투런 홈런을 시작으로 7·8회에 7점을 뽑으며 턱밑까지 쫓아갔다. KT 마무리 박영현의 벽을 넘지 못해 한 점 차로 졌지만, 박진만 감독은 경기후 "KT 불펜을 공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며 회심의 미소를 보였다.
14일간 네 번 등판한 페덱, 보직 내려놓은 원태인
크리스 페덱(사진=삼성)반격의 선봉은 '카우보이' 크리스 페덱이었다. 페덱은 10월 26일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94구를 던지고 사흘만 쉰 뒤, 30일 4차전에 다시 선발로 나서 99구 5.1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다시 나흘을 쉬고 오른 4일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는 102구로 7이닝 1실점하며 던지면 던질 수록 더 좋은 투구를 펼쳤다. 삼성은 이 경기를 연장 12회 혈투 끝에 3대 2로 잡아 시리즈 균형을 맞췄다.
에이스 원태인도 몸을 아끼지 않았다. 마무리 김재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플레이오프부터 불펜을 맡은 원태인은 KIA와 플레이오프 2·3·5차전에 구원 등판했고, KT와 한국시리즈 2차전에도 불펜에서 나왔다. 2차전 승리 뒤에는 다시 선발로 복귀, 우승이 걸린 5차전에서 5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41세 포수 강민호의 생애 첫 우승을 향한 열망도 뜨거웠다. 플레이오프 때부터 옆구리 통증에 시달린 강민호는 정상적인 스윙이 어려울 정도로 아픈 몸으로 포수 출전을 강행했다. 박진만 삼성 감독도 3차전을 앞두고 "쓰러지기 전까진 나가줘야 한다"며 믿음을 보냈다. 4차전에서야 처음 휴식을 취한 강민호는 5차전에 다시 선발로 나서 승리를 합작, 프로 데뷔 23년 만에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역시 불혹의 베테랑 최형우는 지명타자 자리에서 벗어나 외야수로 출전했다. 구자욱이 허벅지 부상 여파로 외야 수비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구자욱과 최형우 둘 다 선발 라인업에 넣으려면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오랜만의 외야 수비에도 최형우는 전력을 다해 뛰고 던지며 큰 무리 없이 좌익수 역할을 해냈고, 덕분에 삼성은 중심타자 2명을 모두 사용하며 폭발적인 공격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아픈 허벅지로 3루까지 내달린 주장
우승 세리머니(사진=삼성)주장 구자욱의 투혼도 눈물겨웠다. 구자욱은 9월 30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허벅지 뒤쪽 근육인 왼쪽 햄스트링을 다쳤다. 힘줄 부위까지 손상돼 포스트시즌 출전을 장담하기 어려웠지만, 강한 의지로 회복해 플레이오프부터 지명타자로 돌아왔다. 다만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아 100%로 뛰기 어려웠고, 외야 수비로도 나설 수 없었다.
한국시리즈 초반에는 조심스러웠다. 1차전에서는 3루에 있다가 외야 뜬공 때 홈에 들어오지 못했고, 2차전에서는 후속 안타가 나왔는데도 3루에서 멈췄다. 그러나 3차전부터는 몸을 사리지 않았다. 2회말 소형준을 상대로 우측 담장 상단을 맞히는 2타점 장타를 친 구자욱은 아픈 다리로 2루를 돌아 3루까지 내달렸다. 2015년 1군 데뷔 이후 아직 손에 넣지 못한 첫 우승 반지를 향해 몸을 던졌다.
선배들이 이렇게 몸을 사리지 않는데 젊은 선수들이 가만 있을 순 없다. 외야수 박승규는 3차전 쐐기 솔로홈런에 4차전 3안타 3타점으로 펄펄 날았다. 4차전 선발로 나선 19세 신인 장찬희는 4이닝 1실점으로 버텼고, 7대 4로 쫓긴 5회초 1사 만루에서 등판한 이재희는 2.2이닝 퍼펙트 투구로 흐름을 끊었다. 5차전에선 김영웅이 4안타 3타점을 몰아쳤고, 김지찬이 5회말 2타점 3루타를 보탰다.
12대 1로 크게 앞선 5차전 9회초 2사. 사흘 쉬고 등판한 페덱이 마지막 타자 장성우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환한 미소는 14일 동안 네 차례나 마운드에 오른 피로도 잊은 듯했다. 옆구리 통증을 참고 버틴 강민호가 감격에 겨워 달려왔고, 구자욱도 아픈 다리를 잊은 채 그라운드로 뛰어나왔다. 삼성 선수들은 일제히 마운드로 몰려들어 12년 만의 우승을 만끽했다. 야구의 신마저 감동할 만큼 간절하고 절실했던 사자군단은 그렇게 다시 정상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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