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이 다가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5·18 민주화운동과 군부의 폭력, 그리고 민주주의의 의미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보다 한 달 앞선 1980년 4월, 강원도의 한 탄광촌에서 벌어진 또 다른 비극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PD수첩'은 민주화운동의 전초전으로 평가받는 ‘사북 사건’을 조명하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국가 폭력의 흔적을 추적한다.

■ 분노가 쌓여 폭발한 탄광촌의 현실
당시 광부들이 처한 환경은 극도로 열악했다. 석탄 생산량을 축소 측정해 임금을 줄이는 ‘부비끼’가 관행처럼 이어졌고, 466동의 사택에 2,000세대가 넘는 가구가 밀집해 살아가는 모습은 ‘닭장’에 비유될 정도였다. 매년 약 200명에 가까운 광부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지만, 노조는 사측과의 유착 속에 침묵을 강요했다.
폭발의 계기는 1980년 4월 21일 발생한 경찰의 뺑소니 사건이었다. 채증 중이던 경찰이 도주 과정에서 지프차로 광부를 들이받았고, “경찰이 사람을 죽였다”는 소식이 퍼지며 억눌려 있던 분노가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
당시 광부 이원갑 씨는 “이제는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다”고 회상했다. 분노한 광부들은 사북지서와 광업소를 점거했고, 마을은 순식간에 경찰과 광부가 맞서는 격렬한 대치 상황으로 치달았다.
■ ‘사북의 봄’ 뒤에 이어진 배신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이 상황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11공수여단을 포함한 1,200여 명의 병력과 헬기, 총기를 동원한 진압을 준비했다. 대규모 유혈 사태가 예상되는 가운데, 상여금 인상과 강제 진압 중단, 관련자 불처벌 등을 골자로 한 노사정 합의가 극적으로 성사되며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후 노동쟁의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신군부는 강경 진압으로 방향을 틀었고, 전두환의 지시로 구성된 ‘사북 합동수사단’은 주민과 광부 140여 명을 영장 없이 연행했다. 정선경찰서에서는 고춧가루 물고문과 폭행, 성적 가혹행위 등 심각한 인권 침해가 자행된 것으로 전해진다.
‘PD수첩’이 확보한 당시 문건에는 광부들을 ‘불순분자’, ‘고첩’ 등으로 규정한 표현이 남아 있었다. 이는 생존권을 요구한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정치적 폭동으로 왜곡하려 했던 정황으로 해석된다.
■ 아직 끝나지 않은 진실 규명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사북 사건의 책임이 국가 권력에 있다고 판단하며,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공식 사과를 권고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국가 차원의 사과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 6년의 기록, 그리고 다시 조명되는 사북
이번 방송은 다큐멘터리 감독 박봉남과 ‘PD수첩’의 협업으로 완성됐다. 박 감독은 6년에 걸쳐 현장을 기록하며 100여 명의 관계자를 인터뷰했고, 그 결과물인 영화 '1980 사북'은 2024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당시 문재인은 관람 후 “가슴이 먹먹하다. 사북 노동 항쟁은 한국 노동운동의 출발점”이라는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오랜 시간 쌓아온 기록과 시사 프로그램의 시선이 만나 드러나는 1980년 사북의 진실. 이제 남은 것은 국가의 책임 있는 응답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편 ‘PD수첩’ ‘1980 사북’ 편은 4월 21일 밤 10시 20분 방송된다.
iMBC연예 유정민 | 사진출처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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