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엑스포츠뉴스 유희은 기자) 권리에는 의무가 따르고, 사회적 혜택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전제된다. 이는 현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 계약이자 공동체를 유지하는 불변의 원칙이다. 특히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막대한 부를 창출하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통해 병역 혜택이라는 국가적 수혜를 입은 공인에게 납세 의무는 단순한 행정 절차를 넘어선 도덕적 증명서와 같다. 과거 리오넬 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이 세무 논란에 휘말렸을 때, 대중이 그들의 천재적인 재능보다 시민으로서의 책임에 더 엄중한 시선을 보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룰러' 박재혁의 사안은 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 e스포츠 업계 전반의 자산 관리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세청의 추징 처분에 불복해 조세심판원까지 이어진 끝에 내려진 기각 판결은, 선수 측의 소명이 행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는 법적인 범죄라기보다 세법상 인정되기 어려운 행정적 실책에 가깝지만, 공적 혜택 수혜자라는 위치와 맞물리며 e스포츠 산업의 비대해진 규모에 비해 턱없이 낙후된 선수 관리 시스템의 한계를 증명하는 사례가 됐다.
■ 확정된 조세회피와 공개 결정문에 담긴 물증

이번 사안의 대상은 2018년부터 2021년 귀속분 종합소득세 및 증여세다. 조세심판원은 지난 2024년 7월 8일 '룰러' 측의 청구를 최종 기각하며 행정적 잘못을 공식화했다. 결정문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부친의 출입국 기록이다. 2018년부터 2021년 사이 '룰러'는 국내 리그(LCK) 소속으로 활동하며 수차례 해외 대회에 출전했으나, 매니저 업무를 수행했다는 부친은 같은 기간 단 한 차례의 출입국 기록도 없었다는 사실이 객관적 물증으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가공경비를 활용한 업무무관비용 산입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행정적 결격 사유가 됐다.
구체적으로는 실체가 없는 용역에 대해 대가를 지급한 것으로 꾸며 필요경비를 과다 계상한 점, 그리고 본인 소유의 주식을 부친 명의로 관리하며 배당 소득 등을 분산하려 한 명의신탁 행위가 지적됐다. 특히 명의신탁에 대해 심판원은 세 부담을 부당하게 감소시키려는 조세회피 목적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결국 절세와 조세회피의 경계를 넘어선 무리한 비용 처리가 행정적으로 '조세회피'로 확정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다만 이 사안을 두고 일각에서는 '탈세'와 동일시하는 시각도 있다. 사안의 본질을 정확히 짚기 위해선 두 개념의 구분이 먼저다. 형사 처벌 대상인 탈세는 적극적인 사기나 은폐를 통해 세금 징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행위인 반면, 조세회피는 법망의 허점을 이용해 세 부담을 줄이려다 행정적으로 부인당하는 행위를 뜻한다. '룰러'의 경우 사법적 처벌을 받는 범죄자로 규정하기엔 무리가 있으나, 국가 기관인 조세심판원에 의해 '행정적 조세회피'임이 최종 확정되었다는 점에서 공인으로서의 도덕적 타격은 피할 수 없게 됐다.
■ 가족 경영 의존의 리스크와 시스템 구축의 시급성

근본적인 문제는 1998년생인 '룰러'가 2016년 데뷔 이후 게임에만 매진하는 동안, 자산 관리를 전문 시스템이 아닌 가족 경영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는 점이다. 선수는 가족의 보고를 믿고 구체적인 위반 여부를 인지하지 못했을 개연성이 크지만, 그 무지가 의무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결국 가족 중심의 자산 관리가 절세와 조세회피의 경계를 넘어서면서 선수의 커리어에 지울 수 없는 얼룩을 남겼다.
이러한 환경은 비단 '룰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 사회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이 신뢰할 수 있는 가족에게 자산을 일임하는 방식은 업계 내에서 매우 보편화된 관행이다. 따라서 이번 조사는 개별 선수를 향한 질타에 그치지 않고, 제2의 사례를 막기 위한 리그 차원의 자산 관리 가이드라인과 정기적인 세무·법률 교육 시스템 구축으로 이어져야 한다. 스타플레이어들을 검증되지 않은 관리 환경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인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e스포츠가 진정한 프로 스포츠로 나아가기 위한 본질적인 과제다.
■ 감정적 호소에 그친 위기 관리, 사무국은 '냉철한 잣대' 들이대야
사건 직후 발표된 에이전시 슈퍼전트의 1차 입장문 역시 대외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여러 아쉬움을 남겼다. 해당 입장문이 구체적인 법리 소명이나 행정적 착오에 대한 설명보다 감정적인 호소에 치중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결과적으로 대중의 엄격한 시선을 충분히 읽어내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선수의 가치를 보호해야 할 매니지먼트사가 사안의 본질을 명확히 짚어내기보다 비판 여론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점은 통렬한 지점이다. 이는 향후 유사한 위기 상황에서 e스포츠 매니지먼트사가 취해야 할 전략적 소통 방식에 대해 깊은 고민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현재 LCK 사무국은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조사위원회를 통해 사실관계 확인에 착수했다. 이번 사안이 형사 처벌 대상인 탈세와는 결이 다르더라도, 국가 기관에 의해 행정적 조세회피가 확정된 만큼 사안의 무게를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사무국은 무조건적인 엄벌주의를 경계하면서도 사회적 공정성과 리그의 명예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페널티 인덱스에 근거한 냉철한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특히 아시안게임 금메달 수혜자라는 '룰러'의 상징적 위치를 고려할 때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다. 사무국은 선수의 고의성 여부와 인지 정도를 면밀히 파악하는 동시에, 이번 결정이 향후 e스포츠 공인들이 마주할 납세 의무와 행정적 책임에 대한 객관적인 선례로 남을 수 있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 가장 공정한 판단은 때로 가장 불편한 판단이다. 지금 사무국에 필요한 건 명분이 아니라 그 불편함을 감당할 의지다.
사진 = 라이엇 게임즈, '룰러' 박재혁 조세심판원 결정문, 엑스포츠뉴스 DB, 슈퍼전트 SNS
유희은 기자 yooheeki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