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여제' 안세영 그랜드슬램, 역사를 넘어 기준이 되다 [박순규의 창]
'배드민턴 여제' 안세영이 12일 마침내 아시아선수권대회 정상에 오르며, 여자 배드민턴 단식 역사상 전인미답의 고지인 '커리어 그랜드슬램(올림픽·아시안게임·세계선수권·아시아선수권)'의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닝보=신화.뉴시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스포츠에는 ‘완성’이라는 단어가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나 2026년 봄, 중국 닝보에서 그 어려운 일이 현실이 됐다. 2026년 4월 12일, 중국 닝보 올림픽 스포츠 센터. 1시간 40분에 걸친 숨 막히는 사투 끝에 상대의 마지막 셔틀콕이 라인을 벗어나는 순간, 24세의 여제는 두 팔을 벌려 코트의 모든 영광을 품어 안았다.

안세영이 마침내 아시아선수권대회 정상에 오르며, 여자 배드민턴 단식 역사상 전인미답의 고지인 '커리어 그랜드슬램(올림픽·아시안게임·세계선수권·아시아선수권)'의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 이는 단순한 대회 우승을 넘어, 당대 유일의 '여제'가 세계 스포츠 역사의 '전설'로 완벽히 자리매김했음을 알리는 거대한 대관식이었다.

이번 결승은 불과 한 달 전, 전영오픈에서 뼈아픈 패배를 안겼던 세계 2위 왕즈이와의 재대결이었다. 게다가 경기장은 왕즈이를 향한 일방적인 환호로 가득 찬 중국의 안방이었다. 자칫 심리적으로 흔들릴 수 있는 최악의 조건이었지만, 안세영은 흔들림 없는 전략과 기량, 정신력으로 상대를 완벽히 무너뜨렸다.

1시간 40분의 사투 끝에 왕즈이를 꺾고 아시아선수권 정상에 오른 안세영의 여유있는 제스처./닝보=신화.뉴시스

스코어는 2-1(21-12, 17-21, 21-18). 숫자만 보면 접전이지만, 내용은 ‘지배’에 가까웠다. 공격 득점 우위(+8), 네트 플레이 압도(+5), 그리고 9대 15라는 범실의 차이. 이 세 가지 지표만으로도 승부의 본질은 명확하다. 결국 스포츠는 "보이지 않는 질서가 보이는 결과를 만든다"는 점을 명징하게 증명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체력과 운영이다. 1시간 40분 혈투 속에서도 3게임 초반 9-3까지 격차를 벌리는 장면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선 ‘경기 설계 능력’을 보여준다. 상대를 좌우·전후로 흔들어 체력을 소모시키는 방식은 마치 체스의 그랜드마스터처럼 한 수 앞을 내다보는 전략이었다. 손자병법의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가 코트 위에서 그대로 구현된 셈이다.

이제 비교의 대상은 동시대 선수가 아니다. 역사다. 배드민턴에서 린단과 리총웨이가 양분했던 시대가 있었다면, 안세영은 그 계보를 넘어선 ‘단일 지배자’에 가깝다. 특히 여자 단식에서 메이저 6관왕(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전영오픈·파이널·아시아선수권)을 완성한 사례는 전례가 없다.

안세영의 벽을 또 다시 넘지못하고 무너진 왕즈이./닝보=신화.뉴시스

타 종목으로 시선을 넓히면 테니스의 세레나 윌리엄스, 골프의 타이거 우즈가 떠오른다. 세레나의 메이저 23승, 우즈의 PGA 통산 82승 등 숫자의 규모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중요한 순간, 가장 강하다"는 점이다. 안세영 역시 이번 결승 17-17 동점 상황에서 4연속 득점을 몰아치며 경기를 끝냈다. 위대한 선수의 조건인 ‘클러치 능력’을 완벽히 증명한 장면이다.

기록된 숫자들 역시 안세영의 ‘절대성’을 말해주고 있다. 세계랭킹 1위를 70주 이상 굳건히 지키고 있으며, 왕즈이를 상대로도 통산 19승(5패)으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결승전 범실은 상대보다 6개가 적었고, 평균 20~30초 이상의 긴 랠리를 유도하며 차곡차곡 점수를 적립했다. 이 수치들은 단순한 승리를 넘어선 ‘통제력’을 의미한다. 경기의 흐름, 템포, 심지어 상대의 체력까지 지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안세영의 그랜드슬램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축적된 시스템과 전략의 결과다. 기술, 체력, 멘탈, 그리고 데이터 기반 전략까지 현대 스포츠의 모든 요소가 집약된 산물이다. 지금 안세영은 ‘최강’이 아니라 ‘기준’이다. 앞으로 등장하는 모든 선수는 안세영을 잣대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스타를 넘어 ‘시대의 척도’가 됐다는 의미다.

이 승리는 단지 한 경기의 승리가 아니다. "누가 최고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에 대한 가장 명확하고도 완벽한 대답이다.

skp2002@tf.co.kr

핫 뉴스

뉴스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