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삼성가도 반한 전설의 콩국수, 서울시청 골목에서 60년을 버틴 '진주회관'

콩국수라는 음식은 묘하다. 처음엔 밍밍하다 싶은데 먹다 보면 어느새 그 고소함에 빠져든다. 어릴 때는 눈길도 안 주던 음식인데, 어느 해 여름 한 그릇을 비우고 나서 그 맛이 계속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여름이 오면 콩국수가 절로 생각나는 사람이 됐다.

지난 21일 방문한 서울 3대 콩국수 진주회관 입구. / 위키트리

올봄은 유독 더운 날이 일찍 찾아왔다. 4월인데도 낮에는 반팔이 어색하지 않은 날이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머릿속에 콩국수가 어른거렸다. 여름 성수기엔 웨이팅이 길다는 말을 들어온 터라, 봄이 지나기 전에 움직이기로 했다. 서울 3대 콩국수집으로 꼽히는 진주회관, 서울 시청 인근 서소문동 골목으로 향했다.

60년, 같은 자리·같은 맛

사방이 현대식 고층 건물로 채워진 시청 인근에서 작고 낡은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냉콩국수전문 진주회관.' 1962년 경남 진주에서 '삼호식당'으로 문을 열었다가 콩국수 맛 하나로 소문이 나자 1965년 서울로 상경해 지금의 자리를 잡았다. 창업주 고(故) 조월래 대표에서 2대, 3대로 이어지며 60년 넘게 같은 레시피를 지켜왔다. 서울시 미래유산 지정, 중소벤처기업부 백년가게 선정은 그 세월이 쌓아올린 훈장이다.

진주회관 콩국수. / 위키트리

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부터 고(故) 이건희 회장, 이재용 회장까지 3대가 단골로 알려지면서 '재벌도 줄 서는 콩국수'라는 수식어도 따라붙었다. 이건희 회장이 병원 입원 중 아들에게 포장을 부탁했다는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봄바람을 가르고 찾아온 손님들

4월 들어 낮 기온이 20도를 웃도는 날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날은 유독 추웠다. 하지만 평일 저녁임에도 식당 안은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혼자 온 중장년 남성, 단골처럼 보이는 60대 이상 손님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콩국수뿐 아니라 섞어찌개, 김치볶음밥을 주문한 테이블도 적지 않았다.

주문한 콩국수가 빠르게 나왔다. / 위키트리

10년째 이 집을 찾는다는 60대 직장인 A씨는 "점심에는 워낙 사람이 몰리니까 저녁에 오는 편"이라며 "고소한 맛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말했다. 간판 하나 바꾸지 않은 집이 맛도 바꾸지 않은 셈이다.

강원도 콩이 만들어내는 크림 같은 국물

진주회관의 콩국수는 강원 산간 지역에서 수급한 황태콩을 쓴다. 여름에 선선하고 가을엔 일교차가 큰 강원 산간의 기후 덕에 콩이 단단하게 여물고 단백질 함량이 높다. 계약 농가를 통해 공수한 이 콩을 하루에도 여러 차례 직접 갈아 국물을 만든다.

콩국물. / 위키트리

주문 후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나온 콩국수는 고명 하나 없이 콩국과 면, 그리고 김치가 전부였다. 국물은 크림에 가까울 만큼 걸쭉했다. 한 모금 머금으면 비린내는 전혀 없고, 직접 갈아낸 생콩 특유의 부드러움과 고소함이 묵직하게 깔렸다. 설탕이나 소금으로 간도 따로 손볼 필요가 없었다.

1인당 1접시씩 나오는 김치. / 위키트리

면은 콩가루와 감자가루 등을 섞어 뽑아 탱탱하면서도 국물을 잘 머금었다. 함께 나온 김치는 맵지 않고 달달하면서 산미가 살아 있었다. 1인당 한 접시씩 따로 나온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공용 김치가 당연한 식당들 사이에서 작지 않은 차이다. 콩국수 한 그릇 가격은 1만6000원.

벽에 붙어 있는 가격표. / 위키트리

4월에 콩국수, 이상하지 않다

콩국수를 여름 음식으로만 여기는 시선이 있지만, 실제로는 계절보다 몸 상태에 더 잘 맞는 음식이다. 소화 부담이 적고 먹고 나면 속이 편안하다.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게 배를 채울 수 있어 입맛이 들쭉날쭉한 환절기에 오히려 어울린다. 진주회관이 3월 1일부터 콩국수 시즌을 여는 것도 그냥 나온 결정이 아닐 것이다.

진주회관 콩국수 면. / 위키트리

시청 골목이 품은 60년의 온기

빽빽하게 놓인 테이블, 오래된 벽, 손님들이 만들어내는 소음. 진주회관 안은 번잡했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오래된 집 특유의 온기가 있었다. 콩국수 한 그릇을 비우고 나왔을 때 칼바람은 여전했지만 속은 묵직하고 든든했다.

진주회관 내부 모습. / 위키트리

여름이 오기 전, 혹은 봄 피로가 쌓이기 시작했다면 서울시청 골목의 이 식당을 기억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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