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 선정, 황홀한 '국내 일출 명소'…하늘 아래 첫 산사, 신라 천년고찰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세상이 잠든 시간에도 산사의 시간은 쉼 없이 흐른다. 고요한 정적을 깨고 산등성이 너머로 서서히 붉은 기운이 번지기 시작하면, 발 아래로는 인상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골짜기마다 가득 찬 안개가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산봉우리를 섬처럼 보이게 한다.

용암사 일출.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자료 이미지로, 실제 모습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옥천 장령산 중턱에 자리한 용암사에서 마주하는 일출은 보는 이의 발길을 붙든다. 켜켜이 쌓인 산자락 사이로 붉은 해가 고개를 내밀 때, 금강의 물줄기가 만들어낸 수증기가 빚어내는 풍경은 이곳이 왜 세계적인 언론사 CNN이 선정한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50곳'에 이름을 올렸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용암사는 신라 진흥왕 13년인 552년에 의신조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로, 오랜 세월 풍파를 견디며 옥천의 영산인 장령산과 함께해 왔다. 사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경내에는 용을 닮은 바위가 있었다고 전해지나,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이 파괴해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아픈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사찰이 품은 분위기는 여전히 평온하다. 산 중턱이라는 지형적 특성 덕분에 사찰 어디에서나 시야가 탁 트여 있으며, 뒤로는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옥천 4경 용암사 일출 / 충청북도 옥천군-공공누리

이곳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일반적인 가람 배치와 다른 석탑의 위치다. 보통 석탑은 대웅전 앞마당이나 사찰 중심부에 놓이지만, 용암사의 보물인 옥천 용암사 쌍삼층석탑은 사방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북쪽의 낮은 봉우리에 세워져 있다. 이는 고려 시대에 성행했던 산천 비보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산천 비보 사상이란 지세가 쇠약한 곳에 탑이나 건물을 세워 부족한 기운을 북돋운다는 믿음이다. 자연 암반 위에 나란히 선 두 기의 석탑은 3층 탑신이 일정한 비율로 높게 솟아 있어 간결하면서도 단단한 인상을 준다. 고려 시대의 석재 결구 수법을 보여주는 이 탑은 오랜 세월 마을을 굽어보며 자리를 지켜왔다.

옥천 용암사 / ⓒ한국관광콘텐츠랩

석탑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장령산의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을 만날 수 있다. 높이 3m에 달하는 이 마애불은 연꽃무늬가 새겨진 대좌 위에 서 있으며, 인자하면서도 엄숙한 표정이 눈길을 끈다. 붉은빛이 감도는 바위 면에 새겨진 불상은 세월의 풍화 속에서도 뚜렷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대성전에 봉안된 목조 아미타여래좌상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문화유산이다. 조선 효종 2년인 1651년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진 이 불상은 온화한 인상과 섬세한 조각 수법이 돋보이며, 산사의 분위기를 더 깊게 만든다.

옥천 용암사 / 한국관광공사(촬영 : 김용훈)

용암사를 찾은 이들은 흔히 이곳을 '구름 위를 걷는 사찰'이라 부른다. 온라인상에서도 용암사의 새벽 풍경에 대한 호평이 이어진다. 새벽 산행의 수고를 감수한 뒤 만나는 운해와 일출은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다는 반응이 많다. 특히 사진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일출과 운해, 그리고 쌍석탑을 한 화면에 담을 수 있는 장소로 꼽힌다. 굳이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지 않더라도 석탑 근처 전망대에 서서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색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휴식을 얻을 수 있다.

사찰 주변의 자연환경도 눈여겨볼 만하다. 용암사 왼쪽으로 이어진 등산로를 따라가면 장령산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데, 이 길은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 산림욕을 즐기기에 좋다. 인근에는 장령산 자연휴양림이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이 머물며 쉬어가기에도 적합하다. 맑은 계곡물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휴양림은 사찰의 고요한 분위기와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또한 옥천의 명물인 '향수 호수길'과 정지용 시인의 생가를 함께 둘러보면 문화와 자연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옥천 용암사 일출 / 한국관광공사(촬영 : 김용훈)

옥천 여행에서는 지역 향토 음식도 빼놓을 수 없다. 옥천은 금강 상류에 위치해 민물고기를 활용한 음식이 발달했다. 대표적인 메뉴로는 생선국수와 도리뱅뱅이가 있다. 갓 잡은 민물고기를 뼈째 고아 만든 육수에 국수를 말아 먹는 생선국수는 담백하면서도 칼칼한 맛이 특징이다. 냄비에 작은 물고기를 둥글게 둘러 바삭하게 익힌 뒤 매콤한 양념을 더한 도리뱅뱅이는 고소한 식감이 돋보여 옥천을 찾는 이들이 많이 찾는 음식으로 꼽힌다. 특히 봄철에는 옥천의 비옥한 토양에서 자란 제철 나물들이 밥상에 올라 계절의 맛을 더한다.

용암사는 별도의 입장료 없이 연중 개방돼 누구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다. 다만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방문할 계획이라면 산길 운전에 주의해야 하며, 산사의 고요함을 해치지 않도록 정숙을 유지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천년의 세월을 품은 석탑과 마애불, 그리고 매일 아침 새롭게 펼쳐지는 일출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차분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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