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말씀 드린다”...23년 만에 자막 수정되는 1000만 '한국 영화'

북파공작원을 사형수와 무기수로 그렸던 영화 '실미도'의 안내자막이 개봉 23년 만에 바뀌었다. 영화 속 설정이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밝히고 실미도 부대 공작원과 유족에게 위로의 뜻을 전하는 내용이 새로 담겼다.

'실미도' 스틸컷. 국방부는 23일 '실미도 희생자 유족회' 요청에 따라 지난 7월 영화 배급사 CJ ENM에 안내자막 수정을 요청했고, 배급사가 이를 받아들여 이달 4일부터 수정된 자막을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 시네마서비스

국방부는 23일 '실미도 희생자 유족회' 요청에 따라 지난 7월 영화 배급사 CJ ENM에 안내자막 수정을 요청했고, 배급사가 이를 받아들여 이달 4일부터 수정된 자막을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배급사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에도 같은 내용이 반영되도록 수정을 요청했다.

새 안내자막은 영화 본편이 시작되기 전에 나온다. 내용은 "영화 '실미도'에서 부대 공작원들을 특수범죄자, 사형수, 무기수로 묘사한 것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상황 설정되었습니다.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및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실미도 부대 공작원들 중에 사형수, 무기수가 없었으며, 대부분 일반 민간인이었음을 명확히 규명하였습니다. 영화 '실미도'로 인해 고통을 받으신 실미도 부대 공작원들과 유족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이다.

기존 영화에도 도입부 안내문은 있었다. "영화 속 훈련병들의 출신성분이나 상황설정이 과거 혹은 현재의 다른 북파공작부대나 북파공작원과는 무관함"이라는 문구였다. 그러나 이 문구는 정작 실미도 부대 공작원들의 실제 출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아 실미도 공작원을 범죄자 출신으로 받아들이는 오해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국방부는 "이번 조치가 실미도 부대 공작원이 사형수·무기수가 아닌 일반 민간인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국민들에게 정확히 전달되고, 희생자 및 유가족의 명예 회복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앞으로도 유족들의 의견을 존중해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과 유가족들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실미도' 포스터. '실미도'는 2003년 12월 24일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작품이다. 1968년 창설된 공군 소속 실미도 부대, 이른바 684부대의 이야기를 다뤘다. 출연진으로는 설경구, 안성기, 허준호, 정재영, 임원희, 강성진 등이 뭉쳤다. / 시네마서비스

한국 영화 첫 1000만 관객…강우석 감독의 '실미도'

'실미도' 스틸컷. / 시네마서비스

'실미도'는 2003년 12월 24일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작품이다. 1968년 창설된 공군 소속 실미도 부대, 이른바 684부대의 이야기를 다뤘다. 684부대라는 이름은 부대가 창설된 1968년 4월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연진도 화려했다. 설경구가 강인찬 역을 맡아 극을 이끌었고, 안성기가 최재현 준위 역을, 허준호가 조 중사 역을 맡았다. 정재영과 임원희·강신일 등도 힘을 보탰다.

흥행 기록은 한국 영화사의 전환점이 됐다. '실미도'는 개봉 58일 만인 2004년 2월 19일 전국 관객 1000만 명을 넘어서며 한국 영화 최초의 '1000만 영화'가 됐다. 당시 영화계에서는 국민 넷 중 한 명꼴로 한 편의 영화를 봤다는 점에서 한국 영화 시장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흥행의 이면에서 공작원들을 범죄자로 그린 설정은 유족들에게 오랜 상처로 남았다.

'실미도' 스틸컷. / 시네마서비스

실미도 부대는 1968년 1월 김신조 등 북한 무장공작원 31명이 청와대 습격을 목표로 북한산을 거쳐 서울에 침투한 '1·21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중앙정보부와 공군 주도로 창설됐다.

부대 공작원 역시 북한 무장공비 수에 맞춘 31명이었다. 이 가운데 7명은 훈련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남은 24명은 3년 4개월 동안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섬에 갇혀 사실상 구금 상태로 지냈다.

가혹한 훈련과 부당한 처우를 견디다 못한 공작원 24명은 1971년 8월 기간병 18명을 살해하고 섬을 빠져나와 서울로 향했다. 이들은 탈출 과정에서 교전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공작원 20명과 경찰 2명, 민간인 6명이 숨졌다. 살아남은 공작원 4명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공군은 이듬해 사형을 집행하면서 가족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고 시신도 인도하지 않은 채 암매장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6년 실미도 사건의 인권침해 사실에 대한 사과와 유해 발굴 등을 권고했다. 국방부는 2024년 10월 실미도 공작원 유해발굴 개토제에서 장관 명의로 공식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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