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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23일 국내 일부 극장에서 관객과 처음 만난다. '버닝'(2018) 이후 8년 만의 장편으로,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개봉 전부터 주목받은 작품이다. 극장 상영을 먼저 거친 뒤에는 넷플릭스를 통해 11월 6일 전 세계에 공개된다.


'가능한 사랑'은 서로 다른 환경에 놓인 두 부부의 이야기다. 총파업과 강제 진압 현장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해고 노동자 호석(설경구)과 마스크 공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지키려는 아내 미옥(전도연), 그리고 해고 노동자의 삶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와 부유한 남편 상우(조인성)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계기로 얽힌다. 네 사람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의 삶과 감춰둔 욕망을 마주하게 된다.
이창동 감독을 비롯해 '버닝'을 함께 쓴 오정미 작가가 각본에 참여했다. 이 감독과 설경구는 '박하사탕'(2000), '오아시스'(2002), '심장소리'(2022)에 이어 네 번째로 호흡을 맞췄고, 전도연과도 '밀양'(2007)과 '심장소리' 이후 다시 만났다. 조인성과 조여정은 이 감독과 처음 작업했다. 러닝타임은 164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다.
작품은 해외에서 먼저 존재감을 알렸다.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지난 6일 월드 프리미어로 처음 공개됐고, 상영 직후 관객들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이후 은사자상인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는데 한국 영화가 베니스 경쟁 부문에서 수상한 것은 2012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황금사자상) 이후 14년 만이다. 이 감독 개인으로는 '오아시스'로 감독상을 받은 2002년 이후 24년 만의 수상이다. 할리우드 리포터, 버라이어티, 가디언 등 외신도 호평을 보탰다. 이어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부문에도 초청됐으며, 제9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한국 대표 출품작으로 선정됐다.
국내 극장 개봉을 시작으로 호주·뉴질랜드는 10월 22일, 미국·캐나다·영국·아일랜드·일본은 10월 23일 상영에 들어간다. 넷플릭스에서는 11월 6일부터 볼 수 있다.


이 감독과 배우들은 21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이 감독과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이 함께했고, 전도연은 연극 '벚꽃동산' 해외 공연 일정으로 화상을 통해 참여했다.
이 감독은 베니스 수상 소감을 두고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상 자체보다 영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가닿을지가 더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쉽고 자극적인 영화가 아닌데도 관객들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과 이야기하려는 바를 느끼고 반응해주는 것이 표정과 태도에서 느껴져 정말 다행이고 기뻤다"고 떠올렸다.
작품의 출발점은 10여 년 전이었다. 이 감독은 대기업의 대량 해고와 파업, 강제 진압 사건을 접한 뒤 큰 충격을 받아 영화를 구상했지만 초기엔 한 차례 영화화를 접었다고 했다. 그는 "과연 그 이야기를 정직하게 할 자격이 있는지, 제가 그들(해고노동자)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확신이 없어서 접었다"며 시간이 흘러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비로소 영화로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극 중 예지는 당사자들이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순간까지 카메라에 담는 인물이다. 이 감독은 이 캐릭터에 타인의 고통을 창작의 재료로 삼는 일에 대한 자신의 오랜 고민을 투영했다고 했다. 그는 "타인의 삶을 그리는 창작자에게는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그들로서 할 수 있을지 질문할 수밖에 없다"며 "그들의 고통을 소비하거나 영화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 사용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평생 해온 질문이고 지금도 쉽게 답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해고 노동자 가족의 심리치료 과정이 비교적 길게 등장하는 것도 이런 고민의 결과였다. 이 감독은 "일을 잃어버림으로써 정체성을 상실한 것 같고, 마음속에 텅 빈 자아를 느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자본의 도움 없이 작품을 만들기 어려운 창작자의 처지도 털어놨다. "영화감독으로서 어떻게 보면 저도 자본과 결혼하고 사는 삶인지도 모른다"면서 "그 속에서도 남의 고통을 탐하거나 착취하지 않고 (타인을) 진실로 사랑하려는 마음, 그것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배우들은 돈과 계급이 각 인물에게 미치는 영향을 파고들었다. 설경구는 호석에 대해 "자아가 완전히 깨진 상태에서 수치심과 죄책감, 분노, 열등감 등 복합적인 감정을 가졌을 것"이라고 했다. 전도연은 "돈과 계급은 사람의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그 사람의 가치를 앗아갈 수도 있다"며 "미옥은 그로부터 자신의 가치와 가족을 지켜내려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조인성은 상우를 "어떤 면에서는 친절하지만, 이면에는 무서운 독을 가진 인물"이라며 "갖지 말아야 할 것을 갖겠다는 욕망이 드러나는 순간 무서워지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조여정은 경제적 안정을 위해 상우와 결혼한 예지가 호석·미옥 부부를 만나면서 "충만한 삶이나 관계가 경제적인 안정감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오랜만에 다시 만난 배우들과의 현장을 두고 이 감독은 한결 편안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예전에는 뭔가를 해내야 하고, 완벽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감독과 배우 사이에도 긴장감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굉장히 편했고 마음을 많이 놨다"고 했다. 또한 "영화가 만들어져도 결국 완성하는 것은 관객"이라며 "'가능한 사랑'이 관객을 만나면서 힘 있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가능한 사랑'에는 엔딩 크레딧 이후 이어지는 별도의 쿠키 영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두르지 않고 인물의 내면을 응시하는 이 감독 특유의 작법이 담긴 만큼 극장을 찾는 관객이라면 러닝타임 안에서 이야기를 온전히 감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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