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0개 중 6편은 한국 소설... 최근 10년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책 1위는?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가 지난 10년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도서 1위와 2위를 나란히 기록했다.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 베스트셀러가 진열되어 있다. / 뉴스1

19일 교보문고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4월 23일)을 앞두고 지난 10년 누적 베스트순위를 집계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기일이 모두 4월 23일인 데서 출발했다. 독서 출판을 장려하고, 저작권 제도를 통해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집계 결과에 따르면 한강 작가의 2007년 작 '채식주의자'가 누적 1위를 기록했고, 2014년 작 '소년이 온다'가 그 뒤를 이어 2위에 올랐다. 또 제주 4·3 사건을 다룬 2021년 작 '작별하지 않는다' 역시 8위에 이름을 올려 상위 10위권 내에 동일 작가의 작품이 3편이나 포함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러한 기록은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따른 ‘한강 신드롬’과 더불어 앞서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 이후부터 이어진 꾸준한 판매고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한강의 소설 3편을 포함해 판매량 상위 10개 도서 가운데 6편이 한국 소설이었다. 한강 작가는 2024년 대한민국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는 2012년 중국의 모옌 작가 이후 아시아 국가 국적 작가로서 거둔 쾌거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 작가의 작품을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정의하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이번 10년 누적 통계는 이러한 세계적 인정이 국내 독자들의 탄탄한 지지와 오랜 애정 위에서 꽃피운 결과임을 입증한다.

제주 4·3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8위에 오른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내 작품 중 가장 먼저 읽어주길 바라는 책"으로 꼽으며 다시금 화제가 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제주 4·3 사건의 비극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내며 죽음에서 삶으로, 망각에서 기억으로 나아가는 강렬한 의지를 담고 있다.

한강 작가는 이 작품을 구상하며 “꿈속에서 본 악몽 같은 이미지”에서 시작했다고 밝혔다. 수천 그루의 검은 나무가 심긴 묘지 위에 바닷물이 차오르는 환각적인 이미지가 소설의 출발점이 됐다. 작가는 이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 실제로 제주도의 학살터를 취재하고, 생존자들의 증언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켰다.

소설은 소설가인 주인공 ‘경하’가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한 친구 ‘인선’의 부탁을 받고, 눈보라가 치는 제주도 중산간의 인선의 집으로 향하며 시작된다. 경하는 그곳에서 인선의 어머니 ‘정심’의 삶과 조우한다. 정심은 4·3 사건 당시 오빠를 잃고, 평생을 실종된 가족의 행방을 찾기 위해 투쟁해온 인물이다.

특히 ‘눈(Snow)’이라는 소재는 과거의 차가운 학살 현장과 현재의 애도를 연결하는 핵심 매개체로 사용된다. 작가는 정심의 지극한 사랑과 기다림을 통해, 죽은 자들과 결코 ‘작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형상화했다.

이 작품은 2023년 프랑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메디치상' 외국어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입증받았다. 한 작가는 이 책을 두고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정의했다. 눈이 내리는 풍경 속에 묻힌 아픈 역사를 작가 특유의 정교한 문체로 복원해냈다는 평을 받는다.

노벨 문학상 선정 위원회 역시 이 작품을 언급하며 “역사적 사실을 환상적인 리얼리즘으로 풀어낸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10년간 부동의 1위, 채식주의자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누적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채식주의자'는 세 편의 중편소설(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이 이어진 연작 장편소설이다. 인간의 폭력성에 저항하며 육식을 거부하고 스스로 나무가 되어간다고 믿는 여성 ‘영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주인공 영혜의 직접적인 목소리 대신, 그를 둘러싼 세 인물(남편, 형부, 언니)의 시선으로 서술된다는 점이다. 한강 작가는 “내가 오히려 가장 두려워하고 힘들어하는 것이 폭력의 장면”이라며, “주인공이 왜 그렇게 폭력을 견디기 어려운 것인지는 역설적으로 폭력적인 장면을 통해서밖에 말할 수 없기에 그렇게 썼다”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2007년 출간된 이 작품은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하며 한국 문학의 위상을 세계에 알렸다. 당시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탄탄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작품으로, 독자들의 마음과 꿈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라고 호평했다. 이후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 수상 등으로 이어지며 세계적 필독서가 됐다.

누적 베스트셀러 2위… 기록이 된 ‘오월의 목소리’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전시된 책 '소년이 온다'. / 뉴스1

2위를 차지한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이어진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다. 소설은 계엄군에 맞서다 죽음을 맞이한 중학생 소년 '동호'와 그 주변 인물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다룬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죽은 소년의 영혼, 살아남은 친구, 고문의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생존자, 그리고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빌려 5·18의 비극을 다각도에서 조명한다. 한강 특유의 문체는 국가 폭력의 잔혹함을 고발하는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역설한다.

한강 작가는 과거 인터뷰를 통해 이 소설을 집필하는 과정이 "매일 벌을 받는 것 같은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보여준 광주의 사진첩에서 받은 충격이 집필의 씨앗이 됐다. 성인이 된 후 소셜 속 주인공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의 유족을 직접 만나는 등 취재를 거쳐 집필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작가는 출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동시에 타인을 위해 얼마나 숭고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며, 과거의 비극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과거의 비극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 존엄에 대한 질문을 던지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러한 진정성은 2014년 만해문학상,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졌으며, 오늘날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는 가장 필수적인 문학적 텍스트로 자리 잡았다.

한국 소설의 약진

이번 10년 누적 집계에서는 한국 소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상위 10위권 내에는 한강의 작품 외에도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5위), 이미예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6위), 양귀자의 '모순'(7위) 등이 이름을 올리며 총 6편의 한국 소설이 순위를 점유했다.

비소설 분야에서는 자기계발서인 '세이노의 가르침'이 3위로 가장 높았으며, 이기주의 에세이 '언어의 온도'(4위), 김수현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9위), 캐릭터 에세이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10위) 순으로 집계됐다.

이어 11위부터 20위 사이에는 '돈의 속성'(김승호),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자존감 수업'(윤홍균),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1'(로버트 기요사키), '코스모스'(칼 세이건) 등 스테디셀러들이 고루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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