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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에서 전 연인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60대 남성에 대해 검찰(현 공소청)이 넉 달 전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고 세계일보가 5일 인터넷판으로 보도했다. 당시 검찰이 내세운 이유는 "폐암 4기로 기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매체에 따르면 서울 마포경찰서는 70대 여성 B씨의 스토킹 피해 신고를 7월 18일 접수했다. 마포경찰서는 이틀 뒤인 7월20일 B씨의 전 연인인 60대 남성 A씨에 대해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신고 이틀 만에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은 경찰이 당시 사안을 가볍지 않게 봤다는 뜻으로 읽힌다.
검사는 영장을 법원에 청구하지 않았다. A씨가 폐암 4기로 기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은 검사가 법원에 청구해야 판사의 심사를 받을 수 있다. 검사가 청구하지 않으면 영장은 법원 문턱에도 가지 못한다. A씨의 구속 여부는 판사의 영장실질심사조차 거치지 못한 채 검찰 단계에서 결론이 났다.
구속영장이 막히자 경찰은 스토킹처벌법상 잠정조치를 신청했다. 이에 따라 A씨는 7월 23일부터 8월 22일까지 한 달 동안 구치소에 유치됐다. A씨는 구치소에서 풀려난 뒤부터 지난달 22일까지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찼다.
A씨는 위치추적 기간이 끝나고 2주 만에 B씨를 살해한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다. 서울 은평경찰서는 B씨의 실종신고를 5일 오전 6시40분 접수했다. 경찰은 B씨의 휴대전화 위치값과 과거 신고 이력을 토대로 A씨의 주거지를 확인했다. A씨의 주거지는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한 다세대주택이다. 경찰은 주거지 안에서 숨진 B씨를 발견했다.
경찰은 오전 8시께 A씨를 살인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 A씨는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경찰은 A씨가 치료를 마치는 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와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다. B씨의 사망 원인과 범행 방법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A씨가 의식불명에 이른 경위도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국가가 A씨의 위치를 감시하던 장치가 풀린 지 보름도 지나지 않아 B씨는 A씨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B씨가 처음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지 넉 달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스토킹처벌법은 수사기관이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도록 여러 단계의 잠정조치를 두고 있다. 잠정조치는 서면 경고, 피해자나 그 주거지 100m 이내 접근금지, 휴대전화 등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전자장치 부착, 유치장이나 구치소 유치로 나뉜다. 법원이 결정하는 이 조치들은 기간이 정해져 있다. 구치소 유치는 최대 1개월까지만 가능하다. 접근금지와 전자장치 부착은 3개월을 넘을 수 없다. 다만 두 차례에 한해 3개월씩 연장할 수 있다.
A씨에게 내려진 구치소 유치는 법이 허용하는 최대 기간인 한 달을 꽉 채웠다. A씨의 전자발찌 부착 기간은 두 달 남짓이었다. 전자장치 부착 기간이 연장됐는지, 접근금지 조치가 함께 내려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잠정조치가 모두 끝난 뒤에는 A씨를 B씨로부터 물리적으로 떼어놓을 장치가 사실상 남지 않았다. 구속영장이 청구돼 A씨가 구속됐다면 수사와 재판 기간 동안 B씨와 격리될 수 있었다.
스토킹 가해자에 대한 전자장치 부착은 비교적 최근 도입된 제도다. 2022년 9월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스토킹 가해자가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사건을 계기로 스토킹처벌법이 개정됐다. 개정법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도록 한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없앴다. 잠정조치에 전자장치 부착도 새로 넣었다. 가해자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이번 사건은 전자장치 부착 기간이 끝난 뒤 벌어졌다.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은 검찰의 판단을 두고도 의문이 제기된다. 형사소송법은 피의자에게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을 때 구속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법원은 구속 사유를 심사할 때 범죄의 중대성과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도 고려해야 한다. 스토킹 범죄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반복해서 찾아가는 특성 탓에 재범 위험성과 피해자 위해 우려가 핵심 판단 요소로 꼽힌다.
검찰은 당시 A씨의 건강 상태를 불청구 사유로 들었다. A씨가 폐암 4기라는 점이 재범 위험성과 피해자 보호 필요성보다 무겁게 고려된 셈이다. 검찰이 당시 재범 위험성을 어떻게 판단했는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B씨는 스토킹 피해를 처음 신고한 7월부터 숨진 5일까지 약 넉 달 동안 수사기관의 보호 조치에 기댔다. 구치소 유치 한 달과 전자발찌 부착 두 달이 지나자 A씨에게 남은 제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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