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어라 마셔라’는 끝났다… 국내 주류 업계, ‘양’에서 ‘질’로 체질 개선 절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대학가에 신입생들이 들어왔음에도 유흥가 분위기는 이전과 사뭇 다르다. 학생 단체 손님에게 술값을 절반이나 깎아준다는 파격적인 문구를 내건 술집들이 등장했으나 효과는 미미하다. 젊은 층의 음주 문화가 근본적으로 변하면서 과거와 같은 ‘대목’은 옛말이 되었다.

소주를 들고있는 모습 / mujijoa79-shutterstock.com

실적으로 나타난 ‘소비 절벽’… 그냥 안 마신다

최근 주류 업계의 실적은 이러한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매출 2조 4,986억 원, 영업이익 1,723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3.9% 줄었으며 영업이익은 17.2%나 급감했다. 특히 4년 만에 매출이 감소세로 돌아선 점은 시장에 충격을 주었다. 롯데칠성음료 주류 부문 역시 소주와 맥주 모두 매출이 하락했고, 맥주 1위 오비맥주도 매출 성장률이 2% 수준에 머물렀다.

주목할 점은 이번 부진이 코로나19와 같은 특수한 대외 변수나 특정 브랜드의 경쟁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소비자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술을 '그냥' 덜 마시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술집에 앉아 있더라도 서너 명이 소주 한 병을 두고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누는 풍경이 일상이 되면서, 술을 팔아 수익을 남기는 업주와 제조사들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약발’ 다한 저도수 경쟁… 정체성 잃은 소주

그동안 국내 소주 시장을 이끌어온 동력은 ‘저도수 트렌드’였다. 하지만 최근 업계에서는 이 전략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16도 소주는 ‘순한 술’로 통했지만, 이제는 소비자들에게 더 이상 신선함을 주지 못한다. 이에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은 각각 ‘진로’와 ‘새로’의 도수를 15.7도까지 낮추며 대응했으나, 이는 일시적인 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도수를 계속해서 낮추다 보면 소주는 결국 청주나 와인 등 10도 초반의 주류들과 직접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 시장에서 소주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장점은 ‘가격’뿐이다. 풍미나 역사적 가치가 아닌 낮은 가격만으로 경쟁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브랜드의 가치를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양’보다 ‘질’… 일본 맥주와 증류식 소주의 약진

국산 주류가 고전하는 사이, 가격대가 높은 ‘프리미엄’ 시장은 오히려 성장하고 있다. 국산 맥주가 부진한 가운데 지난해 일본 맥주 수입액은 전년 대비 17.3% 증가한 7,915만 달러(약 1,175억 원)를 기록했다. 소비자들은 맥주 자체를 끊은 것이 아니라, 맛과 브랜드 가치가 확실한 제품에는 기꺼이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맥주를 들고 있는 모습 / Moomusician-shutterstock.com

이러한 경향은 소주 시장에서도 나타난다. 하이트진로의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인 ‘일품진로’는 2024년과 2025년 각각 100%가 넘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2년 만에 매출이 4배 이상 뛰었다. 한 병에 1,000원대인 희석식 소주 대신 1만 원에서 2만 원을 웃도는 고가의 술을 찾는 수요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증거다.

‘소맥’ 전용 맥주라는 착각… 엇갈린 시장 예측

업계의 한 전문가는 국산 주류의 약점으로 ‘가격과 효율성 중심의 경쟁’을 꼽는다. 음주 문화가 개인의 취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흐르면서 소비자들이 양보다는 질을 찾기 시작했으나, 제조사들은 여전히 과거의 문법에 갇혀 있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최근 국내 맥주 제조사들은 신제품 개발 시 ‘소맥(소주+맥주)용’으로서의 적합성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이트진로의 ‘켈리’나 롯데칠성의 ‘크러시’ 출시 당시에도 업계에서는 소주와 섞어 마셨을 때의 청량감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이는 ‘즐기는 술 문화’로 빠르게 재편되는 시장의 흐름과는 정반대되는 행보였다.

주류 업계, ‘문화’를 팔아야 산다

80~90년대식 대량 소비를 전제로 한 마케팅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전 세계의 프리미엄 주류 정보를 손쉽게 접하는 요즘 소비자들에게 ‘싸고 양 많은 술’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주류 업계 관계자들은 “더 맛있는 술을 만들 기술은 있지만 시장성이 문제”라고 입을 모으지만, 시장은 이미 고급화와 다양화를 요구하고 있다. 일시적인 도수 낮추기나 가성비 강조가 아닌, 독자적인 맛과 이야기를 담은 프리미엄 상품 개발이 실적 개선의 유일한 열쇠다. ‘소맥’이라는 한국 특유의 회식 문화에 기댔던 주류 업계가 이제는 술 본연의 품질로 소비자들에게 가치를 증명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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