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세부터 들어올린 우승컵만 24개…박규남 前성남일화 사장 별세
2006년 일화천마여자축구단 창단식 당시의 고인
[촬영 이상학] 2006.3.3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축구 문외한이 51세에 프로축구 구단을 운영하기 시작해 76세가 될 때까지 25년간 K리그 7회 우승을 비롯해 모두 24개의 우승컵을 끌어모으는 게 가능한 일일까. 이걸 실제로 해낸 박규남(朴奎南) 전 성남 일화 축구단 사장이 25일 오후 5시께 경기 가평군 설악면 HJ매그놀리아국제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26일 전했다. 향년 89세.

1937년 1월 13일 전북 완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이리공고, 건국대와 동 대학원을 나왔다. 국제승공연합 등에서 실무자로 일하다 통일교 부산교구장으로 있던 1975년 문선명(1920∼2012) 총재로부터 "박판남(고인의 개명 전 이름)이 (축구팀) 단장을 잘할 것"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당시 문 총재가 축구단 창단 구상을 처음 밝혔을 때였다. 전북 남원에서 지리산연수원 건설 책임자로 일하던 1988년 일화 축구단 부단장에 임명됐다. 그의 나이 51세. 당시 단장은 곽정환 세계일보 사장이 겸임할 때여서 처음부터 고인이 축구단을 이끌어갔다.

이후 단장을 거쳐 1994년 통일스포츠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2013년 구단을 성남시에 넘길 때까지 줄곧 고인이 구단 사장이었다. 1991∼2004년 대한축구협회 이사, 1991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국가대표팀 단장, 1998년 킹스컵 국가대표팀 단장, 1998∼1999년 한국프로축구 단장협의회 의장에 이어 2000년부터는 한국프로축구연맹 부회장을 맡았다. K리그 7회, 아시아클럽선수권대회 2회 우승을 비롯해 모두 24차례 정상에 올랐다. 동대문과 천안에서 10회, 성남에서 14회 우승컵을 안았다. 1996년과 2002년 대한축구협회 공로상을 받았다.

2013년 스포츠서울과 인터뷰에서 "24년 전 모든 꿈을 접고 축구단을 맡아 밤낮없이 일했다. 이제 제게 남은 것은 축구밖에 없다. 다른 취미도 없다. 다른 사람이 보면 인생을 참 재미없게 살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며 "성남으로 이사 오면서 구입한 정자동의 제 소유 집을 아직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채 성남의 새 동네 전셋집을 구해서 그 동네의 기를 받으려고 애썼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운동장을 일곱바퀴 돌며 우리 선수와 감독 등 열두명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다"고 했을 만큼 성적을 내는데 몰두했다.

클럽하우스나 훈련구장조차 만들지 않은 채 이기는 데만 집중하는 걸 두고 "우승컵을 모으는 데만 돈을 썼을 뿐 마케팅에는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3년 스포츠서울 인터뷰에선 "마케팅도, 홍보도 할 줄 모른다는 지적이 가장 가슴 아팠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었다. 모든 문제를 축구가 아닌 종교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안타까웠다. 좋은 선수를 유치해 우승하면 관중이 늘어나고 마케팅도 잘될 것이라고 생각해 더 성적에 매달린 측면도 있다"고 해명했다.

아들 박영해씨는 "축구 문외한이 어떻게 하면 24차례나 우승을 할 수 있느냐"고 묻자 "걷기 말고는 운동이라곤 모르는 분"이라며 "무슨 일이든 맡으면 어떻게든 이뤄내려는 에너지와 정신력을 타고난 분이셨다. 실제로 관전한 경기가 1천 경기 가까이 될 것"이라고 했다. 2014년부터는 축구장에 간 적이 없다고도 했다. 한웅수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는 "처음엔 축구를 몰랐지만, 나중엔 일가견을 갖췄다"며 "K리그 사상 가장 많은 우승 실적을 거둔 분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유족은 부인 라우열씨와 3남1녀(박영해·박영경·박선영·박재형), 며느리 최보운·김현복·채지현씨, 사위 임성철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3호, 발인 28일 오전 8시 20분. ☎ 02-3010-2000

2009년의 고인
[자료사진]

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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