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여파에 '60년 사랑방' 사라질라, 단골들은 노심초사

오를 일만 남은 가스요금에 동네 목욕탕들 조기 마감·여탕 폐쇄

연내 폐업 결정한 곳도 "어르신들에게는 놀이터, 경로당인데…"

서울 종로구의 한 목욕탕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최윤선 기자 = 11일 오전 7시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목욕탕. 중구 중림동 주민 이모(93)씨가 목욕탕 탈의실에 들어서자 세신사 A씨가 외출했던 가족을 맞이하듯 "왔는감?" 하며 인사를 건넸다.

좁은 탈의실은 머지않아 '주말을 맞아 때를 밀러 왔다'는 70대 여성과 온몸이 쑤신다며 빨리 탕에 들어가야겠다는 다른 손님의 대화로 가득 찼다. 이들은 모두 오랜 기간 알고 지낸 듯했다. 탈의실 보관함 상단은 '꽃집', '정민' 등 주인만이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의 개인 목욕 바구니로 빼곡했다. 손님들은 삼삼오오 모여 스트레칭하고 믹스커피를 나눠 마시며 자식과 손주 얘기를 나누는 등 일상을 공유했다.

하지만 60여년째 굳건히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해온 이 목욕탕에도 최근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중동 사태 장기화로 유가가 폭등하면서, 이미 월 300만원에 육박하는 가스요금이 앞으로 치솟을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목욕탕 주인 B씨는 매일 오전 3시 30분에 기상해 출근한 뒤 온수 탱크와 작은 소금 사우나방을 데운다. 이 모든 과정에 일반 가정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막대한 도시가스가 쓰인다. B씨는 "작은 목욕탕이어도 가스비는 매달 몇백(만원)씩 들기 때문에 부담이 큰 상황"이라며 "손님도 줄어들고 경기 안 좋은 게 체감된다"고 했다.

지난해 벌써 큰 폭으로 오른 가스요금 때문에 목욕탕 마감 시간은 오후 7시에서 6시, 다시 5시로 계속 앞당겨졌다. 사우나방은 아예 오후 4시 30분에 가열을 멈춘다.

B씨는 "인근 시장에서 일하는 단골들이 가게 마감하고 올 수 있게 운영시간을 좀 더 늦춰달라고 한다"면서도 "그러다간 우리가 파산할 지경이라 일찍 문을 닫고 있다"고 했다. 한 70대 여성 단골은 "저녁에 오고 싶을 때도 있지만 주인 사정도 이해가 된다"며 "목욕탕이 없어질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목욕탕
[촬영 최윤선]

이러한 위기는 비단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목욕탕 주인들은 미국과 이란의 충돌 여파가 현실화하면 이 골목의 '커뮤니티' 공간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종로구 낙원동의 한 목욕탕은 지난달 21일부터 아예 여탕 운영을 종료했다. 남탕에 비해 탕 종류가 많고 손님들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 에너지 부담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 목욕탕 사장 장모씨는 "그 전부터 (여탕) 운영을 끝낼지 말지 고민했는데 경기가 얼어붙고 손님이 크게 줄어들면서 결심이 섰다"고 말했다.

비슷한 이유로 중구의 N 사우나는 결국 올해 안으로 셔터를 내리기로 했다. 60대 주인 박모씨는 "오는 손님은 줄어드는데 가스·전기요금은 매 분기 오르고 있다"며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폐업을 결정했다"고 했다.

박씨는 "동네 목욕탕이 어르신들한테는 일종의 놀이터, 경로당이라 많이 아쉬워하신다"며 "폐업 결정을 바꾸진 않겠지만 업계 자체에 지원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ys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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